헤롯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세례 요한의 죽은 영혼이 되살아났다고 하였습니다. 헤롯은 욕정에 사로잡혀 동생의 아내를 빼앗았고 이 일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던 세례 요한을 목을 베었습니다. 왕은 세상에 속한 것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그 위에 군림하는 자입니다. 그는 백성의 지지가 많았던 세례 요한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헤로디아에게 빠져 고심하다가 결국에 요한의 목을 베어 헤로디아에게 바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왕의 속성입니다. 왕은 항상 대세에 몰려다니면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러므로 헤롯은 예수를 보고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로 인하여 일어난 사람들의 움직임이 자기 눈에는 세례 요한의 때와 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많은 군중이 모였고, 군중들은 그를 따르고 지지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도 많은 능력 있는 일을 행하여 허다한 무리가 그를 따랐기 때문에 헤롯은 그를 세례 요한과 같은 인물로 여겼던 것입니다. 헤롯에게는 군중은 세력이고 이것은 세상의 힘입니다. ‘힘은 정의다’라고 한다면 그 힘은 군중으로 나타난 세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수는 정의’가 되고 진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역사는 항상 다수의 승리 아래에 있고 이들의 지배자였던 헤롯에게 예수는 군중을 이끌던 세례 요한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군중들이 예수에게로 몰려가고 난 후에 헤롯은 요한을 잡아 가두었다가 목을 베었고, 예수 역시 그에게서 군중이 떠나가고 난 후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하여 체포, 정죄되었으며 빌라도에 의해 사형되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 두 사람에게 군중이 몰려 있었을 때에는 그들을 해하지 못하다가 군중이 떠나고 난 후에 그들을 해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지배자와 세력의 근성입니다.
오늘 날 많은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진리는 다수를 이기지 못합니다. 다수가 정통이 되고 또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다수는 기득권을 확보하게 됩니다. 유대교는 그들의 기득권(세력)으로 예수를 이단으로 몰아붙여 죽였고 천주교 역시 그들의 기득권으로 개혁자들과 그 교회를 핍박하였으며 개혁 교회 또한 그들이 기득권을 확보하자 다른 개혁자들을 핍박했던 것입니다. 언제나 세력만 확보하면 자기만 옳고 자기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하듯 세상에서는 세력은 힘이고 힘은 곧 정의가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세력으로 평가되는 것은 세상의 원리지 천국의 원리가 아닙니다. 혹 어떤 이들은 그래도 세력도 있으면 더욱 유익하지 않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세력을 얻었을 때 부패했고 변질되었습니다. 세력이 천국을 나타낸 일이 없었고 세력은 천국을 멸시할 뿐 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이 세상(세력)에 속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좋은 씨요 그 씨 뿌리는 자이며 밭에 감추어진 보화이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소유입니다. 천국은 세력에 의해서 세워진 세상과 역사의 형식에 의해 인식되고 평가되는 세계에 의해서 깊이 가리어지고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알려면 이런 것들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내 안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을 꺼내어 온전하게 하나님의 진리 앞에 드려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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