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술이 자네가 원헌다면 하얀 완장에다가 뻘건 글씨로 감시원이라고 크막허게 써서 멋들어지게
채워줄 작정이네."
고단했던 생애를 통하여 직접으로 간접으로 인연을 맺어온 숱한 완장들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종술의 뇌리를 스쳤다. 완장의
나라, 완장에 얽힌 무수한 사연들로 점철된 완장의 역사가 너훌거리는 치맛자락의 한끝을 슬쩍 벌려 바야흐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종술의 가슴을
유혹하고 있었다. 소설가 윤 흥길 님이 쓴 작품 가운데 "완장"이라는 소설 중 일부입니다. 보잘 것 없는 무지렁이 청년 종술은 어느 날 저수지
감시원이 됩니다. 감시원 완장을 차고 나니 저수지에 오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입니다. 그는 완장의 힘이 이렇게 센 것인가? 스스로 놀랩니다.
그리고 서서히 권력의 맛에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완장의 마력에 취합니다. 자신이 엄청난 존재인 줄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
완장의 권세를 휘두르다가 결국 완장 때문에 파멸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원합니다. 성공하기 위하여 오늘을 참고 이겨나갑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여 사는 것을 가리켜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반하여, 세상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모두 이뤄지는 것을
가리켜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의 차이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였다는 것은 그 중심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공에 대한 왜곡된 개념이 교회에까지 침투하여 잘못된 성공 관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자신만을 위하는 세상적인 성공을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진정한 축복인양 착각하게 하는 심각한 오해가 있습니다. 자기만을 위하는 자아 중심적 성공을 참된 성공으로 합리화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집사, 권사, 장로, 목사의 직분의 의미를 섬겨야 할 양이 그만큼 커졌다고 생각하기보다 신분과 지위의 상승으로 생각하고, 직분을
맡은 자로서 그의 삶과 신앙의 내용보다는 그 직분 자체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잘못된 모습을 봅니다. 결국 종술의 완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유교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문화 속에서 살아온 우리는 역할에 따라 자신의 지위가 평가받아왔기에,
지위가 바뀌면 역할을 당연히 바꾸어야만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역할이 바뀌는 것이 곧 신분과 지위의 상승으로 생각하기에 교회 안에서도 직분에
따른 역할을 자기 위치가 올라가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권위적이고 거만한 사람으로 비추어져 교회와 개인 신앙생활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게 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참된 성공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삶입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사는 삶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을 성공으로 보지 않고 참 성공의 길인 섬김을 위한 디딤돌로
여깁니다. 내가 이룬 목표 성취는, 내가 받은 축복은 곧 주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입니다. 물질의 축복, 지위의 상승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요 섬김의 방편입니다. 주님을 위한 섬김을 최상의 기쁨으로 선택한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다면 그것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섬기기 위하여 주신 것일 것입니다. 내게 허락된 모든 것은 주님을 바로 섬기기 위하여 주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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