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장 39절)
심한 정신지체아 자녀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행한 어머니에 대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도 그 아이가 알아차리거나 그에 반응하는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친한 친구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 말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아이가 한 번만이라도 나를 알아보고‘엄마’ 하고 불러만 준다면 이런 수고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인간의 사랑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하겠습니까 !
만약에 그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그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견디고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점점 더 사랑이 메말라가고 있고 어느 곳에서도 사랑을 찾을 길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비정한 동물의 세계가 인간들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인간세계에도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움직여 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뒤쳐진 자를 돌아보고 위로할 여유조차 전혀 없는 세상.
TV에서 가끔씩 나오는 동물의 세계를 보면 참 비정하다 하는 것을 느낍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엄마가 새끼를 양육할 때 사랑으로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능적인 사랑이지. 우리가 말하는 진짜 사랑은 아닙니다.
동물들은 이동을 자주 합니다.
이동을 합니다.
이동을 할 때 보면 대장이 앞서고 모두가 그 뒤를 따르는 데 어떤 험한 길도 대장이 앞서가면 따라가야 합니다.
한번은 강물을 건너가는 소떼를 보았는데 강물이 깊어서 건너기 어려운 데도 대장이 들어서서 건너가자 모두 따라 건너갑니다.
그러나 건너편 언덕에 다다르자 언덕을 뛰어 차고 올라가야 하는 데 앞선 소들이 올라가면서 물로 언덕을 적시니까 미끄러워서 그 다음 소들이 올라가다가 미끄러워서 올라가지를 못하고 물에 빠집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에 오는 소들이 물에 빠진 소를 밟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나가고 나니까 수십 마리가 죽어서 물에 떠내려갑니다.
그러나 그 소들을 밟고 지나간 소들은 미안하다는 표시도 없고 다시 돌아와 보거나 뒤돌아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한번도 없습니다.
이런 비정한 동물의 세계가 오늘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동물적인 현실 안에 산다고 생각해도 꼭 기억하실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힘에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힘"입니다. 우리들 중에는 아직도 이 사랑을 깨닫지 못했거나 믿음이 없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끊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해서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 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는 확신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확신을 가진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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