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태복음 7장 1~6)
비판은 스스로를 황폐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는 자신에게 방해되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 교묘한 방식으로 그들을 공격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 스스로가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고의로 넘어뜨리지 않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될 사람들입니다. 도리어 더욱 적극적으로 넘어진 자들을 세워주고 이미 선 자들도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데 힘을 다해야 합니다. 나의 태도에 따라서 우리의 사회는 달라집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우리의 사회가 계속 발전할 수도 있고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을 하면 사랑이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비판하면 비판이 되돌아옵니다. 사랑은 산산조각이 난 공동체를 하나로 만듭니다. 그러나 비판은 하나된 공동체를 산산조각으로 만듭니다. 물론 어느 분들은 발전하려면 비판을 들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휘두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비판과 충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희승님의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비판은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충고는 충심으로 남의 허물을 고치도록 타이르는 것, 착한 길로 권고하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충고할 수 있습니다. 이 충고는 남을 살려줍니다. 그러나 비판은 남을 내 기준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다보니, 남을 아프게 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칩니다. 그러므로 날카로운 비판은 사람을 죽이지만, 사랑스러운 충고는 사람을 살립니다. 이와 같이 비판이란 위험한 것입니다.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나를 무너뜨리는 대단히 무서운 작용을 합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비판하면 다 도망갑니다. 비판하면 앞에서는 듣는 채 하다가도, 다음부터는 아예 저만치 그 사람의 얼굴만 보여도 도망갑니다. 비판하지 마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따지지 마십시오.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판단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 눈에 보인다 할지라도 그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판단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다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다 먼저 다른 형제들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월권행위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것은 내 권한 밖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우리가 결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따뜻한 사랑으로 세워주고 격려해 주십시오.
매일기도 (http://dailypray.com.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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